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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환 칼럼] 협치의 門, 누가 두드리고 누가 열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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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빅데이터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구글트렌드를 살펴보면 김명수 대법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동반상승 동반하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여부가 단순히 사법부 수장의 자리가 비어 있느냐 아니냐 여부를 떠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정부 개혁 의지의 아이콘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대법원장의 임명이 이처럼 국민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사법불신을 원인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재판 결과가 불공정하다는 응답이 70%에 달하는 조사 결과도 있다. 

    물론 국민들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원인 중에는 ‘법체계에 대한 무지’ 및 ‘불확실한 정보’로 인한 오해도 상당수 있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 불신이 오해에서 비롯됐다 할지라도 사법부가 국민들의 오해를 풀기위한 소통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또 이렇게 국민들의 불신을 받는 과정에서 일부 법관들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사실도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법부의 관료화를 꼽고 있고, 이런 지적들로 인해 국민들은 사법부의 관료화를 개혁할 개혁 대법원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만 놓고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국민들과 눈높이를 얼마나 잘 맞출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거대 담론이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국민 편익 증대이다.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이 있기에, 지금까지 살펴본 빅데이터 수치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국민적 열망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관심으로도 표출됐다. 아래의 데이터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빅데이터 지수를 비교한 것인데, 두 사람의 구글트렌드 지수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사법권력 또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 생각이고, 이런 국민의 열망이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에 대한 ‘키’를 쥐고 있는 안철수 대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과론적이지만, 구글트렌드만 놓고 본다면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됐을 경우, 안철수 대표가 상당한 역풍을 맞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또한 이 데이터는 안철수 대표가 앞으로 어떤 키워드를 중심으로 활동해 나가야 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영감을 준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공명정대’함이다. 

    일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적폐청산’과 비슷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적폐청산’과 ‘공명정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차이점을 보이다. 

    첫째, 적폐청산은 유효기간이 짧다. 지난 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법 처리가 종결되면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상당히 낮아질 것이다. 반면 ‘공명정대’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둘째, 공명정대는 ‘정의로움’ 뿐만 아니라 ‘탁월한 일처리 능력’이란 이미지도 포함하고 있다. 적폐청산보다 더 큰 개념이며 미래지향적이다. 언뜻 잘 와닿지 않는다면 제갈공명을 떠올려보라. 제갈공명하면 연상되는 것이 ‘동남풍’과 ‘읍참마속’이다.  

    이번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문재인 대통령과 안철수 대표에게 제시하는 키워드는 또 하나 있다. 바로 협치다. 지금까지 협치가 국민적 관심사항이 된 것은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다. 협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두 번째는 추미애 대표의 ‘강성’ 발언으로 협치 분위기가 깨졌을 때 이다.  

    협치 그래프의 끝자락은 점선으로 돼 있다. 협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결말이 지어진 것은 아니다. 협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저하되는 방향으로도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에서 협치가 실현될 수 있을까?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협치의 성공 조건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간절한 마음’이 협치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 협치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본다. 위민(爲民)하는 간절한 마음. 나를 내려놓고 민(民)을 우선하는 마음. 

    예수님께서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협치의 문(門). 과연 누가 두드릴까? 

    홍경환 칼럼니스트 arme201011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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